명상의 세가지 방법

 

붓다는 부정적 감정들을 다스리는 팔만 사천 가지 방법을 가르쳤다. 또 불교에는 명상 방법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수많은 명상법 가운데 현대 사회에 특히 효과적이고 누구나 쉽게 행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명상법을 나는 발견했다. (1) 숨결을 지켜보기 (2) 대상을 활용하기 (3) 만트라(眞言)를 암송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출처 : 티베트의 지혜

 


티베트의 지혜

저자
소걀 린포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2-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죽음이란 궁극적인 종말이 아니라 낡아서 해어졌을 때 갈아입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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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을 <지켜보기>

 

이 방법은 무척 오래된 것이고, 불교의 모든 학파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가볍게 그리고 마음을 집중해서 숨결에 주의를 쏟는 것이다. 숨결은 우리의 삶의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생명의 표출이다. 히브리어로 <루아ruah>라고 하는데,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의 영혼을 뜻한다. 기독교에도 성령과 숨결 사이에는 깊은 연결 고리가 있다. 성령 없이는 어떠한 것도 생명을 지닐 수 없다. 붓다는 산스크리트어로 <프라나>라 불리는 숨결을 <마음을 실어나르는 수레>라고 말했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로 프라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숨결을 능숙하게 조절하여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길들여 다스릴 수 있게 된다.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혼자서 몇 분 동안 숨을 깊고 조용히 들이마셨다가 내쉬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졌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단순하게 호흡을 고르기만 해도 우리는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명상을 할 때, 늘 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의식을 가볍게 날숨에 초점을 맞춘다. 숨을 내쉴 때, 날숨과 함께 흘러가 보자. 숨을 내쉴 때마다 집착을 내려놓아 풀려나게 한다. 당신의 숨결이 모든 곳에 넘쳐흐르는 광대한 진리 속으로 녹아들어 간다고 상상해 보자. 숨을 내쉴 때마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기 전에 모든 집착이 용해된 자연적인 빈틈이 있음을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 빈틈, 이 열린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자. 그리고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며 특별히 집중하지 않도록 하자. 열려 있는 빈틈속에서 계속 쉬도록 하자.

 

수행을 닦을 때 정신적인 설명, 분석 또는 내면적인 관심거리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속으로 <지금 나는 숨을 들이 쉬고 있다. 지금 나는 숨을 내쉬고 있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붙이는 실수를 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순수한 현존이다.

 

호흡에 너무 마음을 쏟아도 안 된다. 4분의 1정도만 마음을 쓰고 나머지 4분의 3은 조용히 긴장을 풀고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자. 주의 깊게 숨쉬기를 할수록 당신은 점점 현존하게 되고, 흩어졌던 자신의 단편들이 당신 자신 속으로 모여들어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을 알 것이다.

 

숨결을 <지켜보기>보다, 당신이 숨결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자신을 서서히 숨쉬기와 일치시켜라. 천천히 숨결과 숨쉬는 사람, 숨쉬기가 하나가 된다. 그러면 모은 이원적 대립과 분리가 사라진다.

 

숨쉬기에 집중하는 단순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서서히 걸러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마치 허물이라는 벗는 것처럼 무언가가 벗겨져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숨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쉽게 편안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거의 밀실 공포증 같다고 그들은 느낀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음 명상법이 도움이 될 것이다.

 

대상을 활용하기

 

두번째 명상법은 마음을 대상에 가볍게 의존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명상법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이나 수정같이 당신에게 특별히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대상을 이용할 수 있다. 붓다, 예수 그리스도같이 진리를 체현한 인물, 특히 자기 스승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은 좀더 효과적이다. 스승이란 당신과 진리를 이어주는 살아 있는 연결 고리이다. 스승과 당신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에,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떠오르거나 당신 자신의 본서오가 연결시켜 줄 수 있다.

 

<나처럼 보라>라고 일컬어지는 빠드마 삼바바의 조각상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조각상은 8세기 티베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빠드마 삼바바가 직접 축복을 내렸다.

 

빠드마 삼바바는 자신의 거대한 영적인 힘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티베트에 전했다. 그는 <두번째 붓다>로 알려졌으며,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존귀한 스승>을 뜻하는 구루guru 린포체라고 부른다.  딜고 켄체 린포체는 말했다. <인도, 티베트, 그리고 히말라야의 신성한 대지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스승들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렇지만 모든 스승 가운데 이처럼 험난한 시대에 모든 중생에게 가장 자비로운 촉북을 내렸던 스승이 바로 빠드마 삼바바이다. 그는 자비의 화신이며 모든 붓다의 지혜를 체득했던 인물이다.

 

그의 능력 중 하나는 그에게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또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축복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의 바람을 들어주는 권능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무언가 염감을 얻었다면, 그의 사진을 당신의 눈 앞에 특히 그의 시선이 당신의 눈과 마추치는 곳에 걸어두라. 그 시선에는 깊은 침묵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거의 사진으로 부터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주면서 집착함이 없는 의식의 상태, 즉 명상에 들 수 있도록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빠드마 삼바바와 함께 조용히, 평화롭게 놓도록 하자.

 

 

<나처럼 보라>, <특별한 스승>, <구루 린포체>로 불리는 빠드마 삼바바(=파드마 삼바바)는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이며 우리 시대의 붓다이다. 8세기에 티베트의 쌈얘에서 만드어진 이 조각상을 보고 빠드마 삼바바는 <나처럼 보라>고 말했다. 그는 조각상을 축원하고 나서 <이제부터 이 조각상은 나 자신이나 다름없다>라고 선언했다.

 

 

 

만트라를 암송하기

 

티베트 불교(또한 수피, 정통 그리스도교, 힌두교)에서 많이 쓰이는 것으로, 마음을 만트라(진언, 眞言) 소리와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만트라는 <마음을 보호하는 것을>을 뜻한다. 마음이 부정적인 성향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며, 당신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바로 만트라이다.

 

신경이 날카롭고, 마음이 종잡을 수 없고, 감정적으로 나약할 때 만트라를 읊조리거나 외우면, 당신의 에너지와 기운이 변화됨으로써 당신의 마음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만트라는 소리의 정수이며, 소리의 형태로 표출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만트라의 음절 하나하나는 영적인 힘을 내장하고 있으며, 영적인 진리를 함축하고 있고, 붓다의 말씀에 깃들인 축복으로 진동하고 있다. 또한 마음은 몸 안의 채널을 따라 움직이면서 몸을 순수하게 만드는 숨결의 미묘한 에너지, 프라나를 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만트라를 암송하게 되면 자신의 숨결과 에너지에 만트라의 에너지가 모여들어 당신의 마음과 몸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내가 제자들에게 가르치곤 하는 만트라는 <옴 아 훔 바즈라 구루 파드마 싯디 훔>(티베트 사람들은 이것을 <옴 아 훔 벤자 구루 빼마 싯디 훔)이라고 읽는다)이다. 이것은 빠드마 삼바바의 진언이며, 모든 붓다와 스승, 깨달은 존재들의 진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진언에는 오늘날처럼 폭력과 혼란에 찬 세상에서 당신을 평화롭게 치유하며 변화시키고 보호할 수 있는 힘이 갖춰져 있다. 깊이 주의를 기울여 진언을 조용하게 암송해 당신의 숨결, 진언, 그리고 당신의 의식이 서서히 하나가 되게 하자. 또는 영감을 불어 넣는 방식으로 진언을 암송해 보자.  그리고 때때로 뒤따라오는 침묵 속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자.

 

 

 

 

나는 평생 동안 수행을 닦았지만 아직도 진언의 놀라운 힘에 놀라곤 한다. 몇 년 전에 나는 프랑스 리용에서 워크숍을 지도했던 적이 있다. 300명 정도 모였는데, 대부분 주부들과 심리 치료사들이었다. 하루 종일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계속 나를 따라 다니면서 쉴새없이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어댔다. 오후 시간이 다 지나갈 즈음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모임 전체가 지루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가르친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고 그 효과에 놀라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완전히 기운을 차렸고, 내 주위의 분위기도 바뀌었으며, 모든 청중들이 다시 밝고 명랑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경험들을 그때 한 번 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겪어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단지 우연히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쌈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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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룽타(風馬)의 히말라야이야기 www.lungt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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